작년에 사택 앞에 튤립을 심었습니다. 튤립이 질 때, 내년에 다시 피어오른다는 아내의 말에 그 말을 반신반의 했습니다. 나무가 잎을 다시 내고 꽃을 피우는 것은 그래도 가지라도 있어서 꽃이 피지만, 튤립은 그럴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가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울에는 다 없어져서 흙만 있었습니다. 땅에서 뚫고 올라와서 꽃을 피워야 하는데,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서 은근히 기대하고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가고 날씨가 따뜻해도 감감무소식입니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땅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신비롭게도 꽃을 피운 것입니다. 땅을 뚫고 연약한 모습의 튤립이 지난겨울을 무사히 지내고 피어 오른 것입니다. 예전에는 길에 있는 튤립을 보면 누군가가 옮겨다 심은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 내내 땅 속에 있다가 봄이 되어서 피어 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봄에 부활절이 있는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닌 듯합니다. 볼티모어의 싱그러움은 봄에 느낄 수 있습니다. 마른 장작 같았던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나뭇잎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이 자연이 찬양하는 듯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부활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만이 유일하게 부활하신 분입니다. 인간에게는 실제로 부활하신 분이 예수님 밖에 없어서 그런지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믿지 못합니다. 실제로 우리 눈으로는 그런 일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봄에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을 믿으라고 하는 것처럼 활짝 피는 나무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자연계의 부활이 일어나는 봄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 인생을 바꿔놓으신 주님의 부활을 묵상하고 기뻐할 때입니다. 부활은 인간의 절망과 슬픔을 기쁨과 영광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부활이 있어서 현재의 상황이 죽음과 같은 절망이라도 우리가 견딜 수가 있습니다. 마치 겨울을 견디는 나무들처럼, 조금만 참고 견디면 마침내 주님께서 부활로 다가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