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수요일에 요한 계시록 강해를 위해서 여러 권의 주석서를 보고 있습니다. 같은 복음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의견을 달리하고, 상징과 그림 언어가 많아서 해석에 자의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설교하기 보다는 주로 뒤로 미루기 쉽습니다. 칼빈은 구약의 많은 책을 주석하였고, 신약도 요한계시록만 남겨 놓고 모두를 주석할 정도로 열심히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칼빈이 시간이 없어서 요한계시록을 미루다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요한 계시록은 어떻게 보면 부담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 질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가 말세의 끝으로 보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말씀보다 요한 계시록의 말씀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통해서 우리는 건전한 종말론을 갖게 되고, 예수님에 대해서 바르게 믿게 되고, 교회의 방향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요한 계시록은 1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 계시록은 미래의 일이라고 무관심하게 미룰 말씀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읽어야 하는 복된 말씀입니다.
이 요한 계시록은 편지의 형식입니다. 그 때 당시의 상징이 많이 들어있었던 이 말씀이 그냥 성도들에게 전해졌다면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지의 형식으로 사도 요한의 권위로 일곱 교회에 보내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다른 사도들의 편지와는 다르게, 이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책이고, 예언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준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또한 예언의 책이기 때문에, 단순히 믿는 자는 구원 받고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한다는 묵시 문학의 형태하고는 좀 다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온전히 신앙생활을 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신부로 온전하게 맞이해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요한계시록은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단순히 어렵게만 느껴졌던 상징들은 단순히 그 시대 가운데서 묵시로 로마 황제의 주목과 핍박을 피하려는 목적 외에도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 Criag R. Koester의 [Revelation and the end of all Things] 라는 책에 의하면 상징과 그림 언어로 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더 깊게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느끼게 되고 우리의 감정과 의지까지도 붙들려서 온전하게 신앙 생활하게 한다고 합니다. 요한 계시록의 묘사를 읽으면 마치 영화처럼 장면이 머릿속에 펼쳐지는데, 그렇게 읽다가 보면 우리의 신앙에 도전이 생기고 주님을 깊게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요한 계시록을 읽으면서 서서히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주님에 대한 열정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세의 끝을 향하는 이때에 요한 계시록은 참으로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대마다 특별히 이끄는 성경의 말씀이 있었는데, 이제 요한 계시록이 지금의 시대를 이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