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 한국 일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교황 방문으로 한국 사회에는 큰 파장이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의, 인간 존중, 청빈, 자비, 화해라는 5가지 메시지를 남겼다고 평가합니다. 어떻게 보면 카톨릭의 위상이 교황 방문으로 인해서 더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카톨릭의 역사를 보게 된다면 그렇게 쉽게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근본주의 기독교를 폭력이라 하였지만, 카톨릭에 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지난 주 단기 선교 때 우리는 이철남 선교사님이 살고 있는 지역 이사말에 머물렀습니다. 도시들을 보면 ‘말’자 돌림의 마을이 많은데, ‘mal’은 마을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사말이라는 도시 중앙에는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수도원도 함께 포함되어 있어서 그 건물의 크기가 상당했습니다. 유가탄 반도에 이사말이라는 도시는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닙니다. 그곳에 필요이상으로 큰 성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의문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이철남 선교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오래 전부터 이곳은 마야의 후손들이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할 때, 이 지역을 정복한 후 마야 성전을 허물고 지금의 성당을 세웠습니다. 이사말 대성당은 사제 양성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데 성당 부지를 포함하여 면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제 양성 성당이라고 합니다. 프란시스코 수도사 디에고 데 란다라는 수도사가 성당을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인신 제사를 드리는 피라미드를 제거하고 마야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곳에 성당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3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여서 더욱 유명해 졌습니다. 교황이 인구 15,000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때는 로마 카톨릭과 멕시코의 카톨릭이 하나가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교황의 방문으로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서 로마 카톨릭으로 하나가 되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이 있었습니다. 그 방문으로 인해서 시골 마을에 도로가 생기고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당에 들어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에는 교황의 사진 있었고, 멕시코의 여신인 과달루뻬의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성당에 주인은 과달루뻬 성모나, 교황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카톨릭의 심각한 혼합주의와 우상 숭배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충격 받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사람을 우상화하고 이방신을 믿도록 하게 해서 이사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곳은 선교지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남아 있었습니다. 멕시코의 이사말에 교황의 방문이 남긴 것은 도시의 발전이 있었지만, 우상 숭배를 남겼습니다. 개신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복음 전파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순전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파되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은 더 이상 카톨릭에게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은 복음적인 교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황이 아닌, 우리의 구세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